신비의파라오투탕카멘1
국립과천과학관 특별전시실(2011.10.15-2012.2.26)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은
아시아 국가로는 한국이 처음 전시하는 것으로
1관-다큐멘터리 상영(+유물)
2관-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최초로 발견하고 발굴하는 과정의 애환과 역경 고난 상영,
3관-투탕카멘의 무덤,
4관-투탕카멘의 관,
5관-투탕카멘의 보물(유물)
순으로 전시되고 있으며
투탕카멘의 유물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적인 일이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기념품 매장
▲국립과천과학관
▲전시장 입구
▲전시장 조감도
▲로제타스톤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담은 로제타석)
기원전 196년,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사제들이 발포한 칙령이다.이 돌은 1799년 나일강 삼각주에서 나폴레옹 군대가 발견했으며,고대 이집트의 문자를 해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822년 프랑스인 장 샹폴리옹이 이 세 가지 언어를 비교 분석한 끝에 마침내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이집트 유물과 문화는 이 해독이 없었으면 그저 미스테리한 금덩어리, 돌덩어리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진품
1관▲다큐영상일부
. . .▲파라오의 왕국은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3000년전 신비를 간직한채 우리의 곁에 다가왔다.▲
▲투탕카멘은 외국의 공주와 결혼하여 아시아 국가들과의 교역을 다졌습니다.▲ . . .
▲play ▲왕들의 계곡
< 투탕카멘이 묻혀있던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에 대한 지도 ><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 박사와 영국의 재력가 카나번경의 모습>< 발굴현장의 한 장면 >< 1925년 투탕카멘 미라의 최초 부검 장면 >등등
왕들의 계곡;‘왕릉(王陵)의 계곡’ '왕가의 계곡'이라고도 한다. 당시 국왕들은 매장품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람들 눈에 뜨이기 쉬운 피라미드 등을 피해 의식(儀式)이나 제례를 위한 제전(祭殿)과는 별도로 능을 인적이 드문 계곡 바위틈이나 벼랑에 만들었다. 이곳에는 투트모세 1세부터 람세스 11세에 이르는 제18, 19, 20왕조의 거의 모든 왕들이 묻혀 있다. 왕묘가 아닌 것을 포함하여 60 여기 이상의 묘를 발견▲투탕카멘 조각상▲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투탕카멘의 (흉)상 (BC1341출생 BC 1332~1323 재위)
투탕카멘은 기원전 14세기에 활동한 이집트 제 18왕조의 제12대 왕(파라오)이다. 본명은 투탕카텐(Tutankhaten)이었으나 왕위에 오른 뒤 투탕카멘(Tutankhamen)으로 이름을 바꾸었다.투탕카멘은 BC1341출생 BC 1332년 9세의 나이로 이집트의 파라오에 등극,18세에 사망(BC 1323년)할 때까지 9년간 재위했으며 투탕카멘의 무덤은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룩소르 부근 나일강 서안의 '왕들의 계곡'에서 발견됐다.투탕카멘 무덤은 도굴되지 않은 유일한 이집트 왕릉이다. ( 시대;지금으로부터 3,350 여년 전 )2관▲영상화면일부
이 엄청난 발견 뒤엔 무슨 일인지 발굴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이유없이사망하는 불행이 잇따랐다. 1923년 하워드 카터와 함께 이 무덤을 발굴했던 카나번이 모기에 물려 죽은 걸 시작으로 무덤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 13명이 원인불명의 병이나 자살 등으로 세상을 뜨자 급기야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이 생겼다.
▲전실
전실은 1922년 11월 26일 영국인 왕릉발굴자 하워드 카더 박사와 재력가 카나번경이 처음 들어 갔던 방이며 각 방에는 600개가 넘는 유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이 방은 3300년 동안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는 곳이다.전차의 부품,화려한 설화석고 그릇,동물들이 그려진 의식용 소파 3개 등을 볼 수 있는데 사자머리 소파 아래에는 투탕카멘이 어렸을 때 사용한 작은 흑단옥좌도 있다.암소머리 장식이 달린 소파 아래에는,죽은자의 왕국에서 음식을 저장하는데 사용 할 달걀 모양의 흰색 그릇이 있다.하마 머리 침상 아래에서 카터는 화려한 금박을 입힌 옥좌를 발견 했는데,사방이 모두 금으로 둘러져 있고 유리와 무늬를 넣은 돌로 빽빽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전실
▲전실
▲전실
▲ 보물의 방 [ 가운데 뒤편 제일 큰 것(황금색)이 카노포스사당 ]
▲ 보물의 방
<보물의 방>중앙에는 저승의 신인 아누비스의 상징인 자칼(보자기≒스카프 두른)이 이방을 지키고 있고 그 뒤로 암소의 여신인 메헤드 웨레드의 두상(뿔 달린)이 보인다.또 그 뒤에는 팔을 뻗어 벌린 여신이 카노포스 사당을 지키고 있으며 서쪽으로 놓인 배 등이 발견된 보고(寶庫)다.
◆ 보물의방- 1926년 말, 하워드 카터는 보물의 방 발굴 작업을 착수하였다. 출입구 바로 옆에는 죽은 자의 신인 아누비스가 지팡이를 쥔 채 썰매를 타고 자칼의 모습을 한 채 신비로운 파수꾼처럼 있다. 그 뒤에 있는 것은 암소여신으로 하늘을 상징하는 메헤드-웨레드(Mahet-Weret)의 두상이다. 아누비스 형상 왼쪽에는, 화려한 장식이 있는 궤를 볼 수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검은 함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각 함에는 신이나 왕들의 금박 형상들이 있었으며 함 옆에는 여러 가지 배가 있다. 뱃머리는 죽은 자의 왕국인 서쪽을 향하고 있다. 뱃머리 아래에는 성스러운 태양과 달의 범선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배도 있다. 입구 반대편에서 카터는 특이한 물건을 발견했는데 사당처럼 생긴 금박을 입한 함으로,맨 위쪽에는 우라에우스 뱀의 띠가 장식되어 있었다.뱀들은 사당 안에 있던 카노포스 단지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카노포스 단지 안에는 왕의 장기가 들어있는 작은 상자가 있다.금박을 입힌 네명의 여신,이시스,네프티스,나이스와 셀케트 등이 사당을 보호한다.화려한 보물들뿐만 아니라 방에는 또한 수많은 일상용품들이 있는데 의류,소형 가구,보드 게임,화장품,무기,악기,도구,가정용 장비 및 필기 용구 등이 그것들이다.
▲보물의 방
투탕카멘 왕 무덤의 구조도로 전실,별실,현실과 보물의 방 4부분으로 구성돼 있고 이 중 투탕카멘 왕의 미라가 발굴된 방은 "현실" 방이었다.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을 이집트 룩소르 나일강 서쪽 왕들의계곡에서 발굴한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 박사와 영국의 재력가 카나번경 이 두 사람의 노력으로 우리는 어둠에 묻혔던 투탕카멘의 3,350 여년전의 신비의 셰계를 알게되었다. ●별실-전실의 하마 여신 침상 뒤에서 하워드 카터는 아래쪽으로 나 있는 작은 방 입구를 발견했는데 이 방이 별실이었다. 입구는 밀봉돼 있었지만 모양이일정치 않은 구멍이 뚫려 있어 이는 도굴꾼이 뚫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 방은 처참하게 망가진 상태였다. 원래별실은 저장실로 사용했던 듯하다. 발굴팀은 별실에서 향유를 담았던 것으로 보이는 설화석고 그릇과 파이앙스 그릇, 묵시, 기타 그릇과 비품, 동물의 발 모습을 한 침대 등을 발견했다.
▲play ▲현실의 사당(망자의 집)▲
■ 현실(玄室)-전실에서 유물들을 발굴한 후 하워드 카터와 카나번 경은 1923년 2월 17일 현실을 열었다. 이 방은 하나의 커대한 금박 사당이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당의 덮개를 열자 내부에는 또 다른 사당이 3개 더 들어 있었다. 4번째인 가장 안쪽의 사당 안에서 발굴자들은 무거운 석관을 발견하였는데, 그 안에 또 3개의 관이 있었다. 석관과 관을 열기 위해 사당을 먼저 해체하고 치우는데만 몇 달이 걸렸으며 비좁은 공간에서의 작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석관 내부에서 카터는 마침내 미라 형태의 관 3개를 발견했으며 이들 관 내부에도 관이 하나씩 더 겹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장 안쪽의 관은 110kg의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머리에 황금마스크를 쓴 투탕카멘 왕의 미라가 들어 있었다.바깥쪽 함과 묘실 별 사이의 좁은 통로에도 많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들인데 왕이 하늘을 가로 질러 항해할 때 쓰는 노도 있었다. 나머지 것들은 개봉된 사당 앞에 있던 기름 램프 등을 포함하여 이집트인의 일상생활품들이다. 램프는 연못에서 떠다니는 연꽃의 꽃봉오리와 잎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 현실(玄室)-투탕카멘의 미라가 있는 무덤(사당)의 방을 현실이라고 한다. 이 현실은 목곽 형채의 커다란 사당(祠堂)으로 꽉 차 있었다. 그 안에 세 개의 사당이 더 들어 있었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품은 모양으로 숨겨져 있었다. 그 한가운데 투탕카멘의 석관이 놓여 있었다. 사당들과 석관은 고대의 예배당처럼 생겼는데 이것은 영원의 집을 의도한 것으로 그 안에서 파라오는 완벽한 보호아래 쉴 수 있었다. 사당을 이룬 면은 현실 바닥위에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다. 사당의 각 부분은 분리된 채 현실 안으로 들여 와 하나씩 차례대로 조립돼 제일 바깥쪽 사당으로 마감됐다.
▲가장 바깥쪽의 첫 번째 사당은 이집트 왕이 기념일을 축하하는 장소인 이중구조의 예배당 모습을 띄고 있다. 사당의 겉면은 푸른색 파이앙스를 상감에 넣은 무늬로 장식됐다. 여기에는 두 개의 도금된 데드 기둥모양의 부적과 두 개의 이중매듭 부적이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안정과 보호를 뜻하는 상형문자다.석관을 싸고 있는 맨 겉에 있는 사당의 벽면 모습으로 이 벽면에 그려진 벽무늬는 안정감을 주는 무늬라 한다.
▲<현실>의 전경으로 이 방 전체를 "현실"이라 하며 방 가운데 있는 거다란 함처럼 생긴 집이 "사당(망자의집)"이다.현실의 벽면에는 각종 벽화도 그려져 있다, 이 사당은 전부 4개 인데 맨 겉에 있는 것이 첫 번째 사당이고 그 속에 두번째 사달이 들어 있고, 그 두번째 사당안에 세번째 사당이 들어 있고 세번째 사당안에 4번째 마지막 사당이 들어 있으며 그 4번째 사당안에 석관이 들어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 사당 한가운데 보이는 것이 석관이다.▼
■ 사당과 석관-첫 번째 사당의 문을 열면 그 뒤에 설화석고 항아리와 장식 지팡이, 활과 화살통이 놓여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당 사이에는 텐트형 구조물이 있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사당 사이의 비좁은 공간에는 활 몇 개와 아름답게 장식된 부채가 놓여 있었다.네 번째 사당 안에 석관이 있으며 석관엔 투캉카멘의 미라형 관이 들어 있다.사당 우측 앞에 있는 물통은 부활의 신 오시리스가 매년 연초에 새해의식을 행할 때에 투탕카멘도 의식을 행하기 앞서 목욕재개하기 위해 준비한 물통이라고 한다.사진 좌측 앞은 사당 석관 앞에 있는 거위의 모습으로 이 거위는 망자를 하늘나라로 오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석관 앞 가운데 있는 것은 망자를 어둠에서 밝히는 램프로 연꽃 무늬로 돼 있으며 램프안에는 소금과 방부제가 들어 있다고 한다.
▲현실의 단면 구조도
▲ 현실 동쪽 벽에 그려진 벽화로 썰매를 끄는 사람들은 모두 12명의 고관.화려하게 장식된 차양 아래 놓인왕의 유해가 썰매에 실려 있다.
투탕카멘의 미라가 든 관을 운구하는 사람들을 그린 것으로 맨머리 모습을 한 고관 2명 앞에서 관복을 입고 걷는 사람들은 그와 가까웠던 9명의 친구들이라고 한다.이른바 '9명의 친구들'은 가장 앞에서 행렬을 이끌고 있다.관복 차림에 머리를 민 두 명의 재상(宰相)은 왕과 가장 가까운 곳에 군사령관으로 훗날 스스로 파라오가 된, 저 유명한 호렘헵이다.
▲현실 북쪽에 있는 벽화로 바른쪽에서 두번째가 투탕카멘의 미라인데 다음의 왕인 아이Ay(맨 우측 사람)가 <투탕카멘의 입을 여는 의식>을 행하는 장면으로 입을 열어야 망자가 말을 할 수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이 곳에는 이른바 '입을 여는 의식'이 묘사되어 있다. 사제장이자 후계자인 아이(Ay)가 '아들' 자격으로, 이제는 오시리스로 변한 투탕카멘의 미라 앞에 마법의 도구들을 준비해 놓고 서 있다. 이런 의식은 역시 개인의 무덤에서 유래한 것인데,죽은 왕이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감을 사용해 먹고 마실 수 있도록 해주는 의식이란다.벽화에 새겨진 글을 보면 아이는 이미 왕의 타이틀을 물려받았다.다음 장면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는 투탕카멘이 묘사되어 있는데,몸에 둘렀던 아마포를 벗고 누트 여신 앞에 그와 동등한 자격으로 서 있다. 누트 여신은 양손에 물을 상징하는 상형문자를 들고 있다.마지막 장면은 황금마스크를 쓴 투탕카멘과 그의 불멸의 영혼 '카'가 부활의 신 오시리스 앞에 서 있다. 투탕카멘의 초록색 피부가 자연이 가진 재생의 힘을 상징한다.
■ 원숭이 벽화-서쪽 벽의 이 벽화는 지하세계에 관한 왕실 책자인 “암두아트”의 첫 번째 시간 중 한 구절을 묘사하고 있다. 웅크린 비비원숭이 12마리가 지하세계로 가는 태양의 배를 맞이 하고 있다. 맨 위쪽의 태양의 배에서는 아침 태양의 상징인 풍뎅이가 밤사이 원기를 회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벽에는 '암두아트'라는 책자에서 발췌한 삽화들이 그려져 있다. 암두아트는 아마르나 시대 이전에 왕실에서 주로 보던 사후세계 안내서다. 열두 마리의 원숭이가 저승에 도착하는 태양의 배를 맞이하고 있다. 태양의 배에는 부활의 상징인 스카라베 풍뎅이가 타고 있다. ▲현실 남쪽 벽 입구에 있는 벽화로 망자가 된 투탕카멘 왕이 왼쪽의 죽음의 신 아누비스와 오른쪽의 하늘과 지하세계의 여신인 하토루 두 사람 사이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play ▲ 벽화 / 채색부조
▲ 현실의 가장 바깥쪽의 첫 번째 사당
▲ 첫 번째 사당 안(속)의 두 번째 사당
▲ 두 번째 사당 안(속)의 세 번째사당
▲ 세 번째사당 안(속)의 네 번째 사당 [ ☞ ]
[ ☞ 의 반대쪽 사진 ] ▲ 세 번째사당 안(속)의 네 번째 사당
▲ 네 번째 사당 안(속)의 석관
■ 석관-규암(관)과 화강암(뚜껑)으로 길이 256cm, 너비 133cm로 된 관, 석관은 현재 투탕카멘의 무덤에 보존돼 있다.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보존돼 있는 속관과 따로 분리돼 있는 것이다. 석관의 긴 면 양 옆에는 머리 끝 부분에 와제트의 눈이 장식돼 있다. 여신 이시스(왼쪽)와 네프티스(오른쪽)는 모서리에 부조 양식으로 조각돼 있으며 중요성이 떨어지는 네이트여신과 셀케트여신은 발끝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이 4명의 여신은 모두 미라의 머리 쪽을 쳐다보고 있다, 석관의 측면에 새겨진 문장의 맨 위 부분은 가운데 부분이 갈라져 있어서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도 읽을 수 있다. 각 문장의 끝은 세로 단(段)으로 이어져 수직으로 계속된다.
제18왕조를 통틀어 석관에 묻히는 것은 왕실의 특권이었다. 투탕카멘의 석관의 관(상자)부분은 규암으로 만들었으며 카베토처마 돌림띠가 있는 사당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한편 석관의 뚜껑은 분홍색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뚜껑 가운데 균열이 있어 그 위에 회반죽을 바르고 도료를 사용해 덧칠을 했는데 이는 분명 매장 도중 사고가 났음을 말해 준다고 한다.
첫 번째 사당 속의 다른 사당과 석관을 밖으로 끄내 진열 한 모습 [ 우측 맨 앞쪽이 네 번째 사당 안의 석관 모습 ] ▲
첫 번째 사당 속의 다른 사당과 석관을 밖으로 끄내 진열 한 모습 [ 우측 맨 앞쪽이 네 번째 사당 안의 석관 모습 ] ▲
▲ 첫 번째 사당 속의 다른 사당과 석관을 밖으로 끄내 진열 한 모습 [ 좌측 맨 앞쪽이 네 번째 사당 안의 석관 모습 ]
▲석관속의 미라형 관[첫번째 관과 그 속의 두번째 관 또 그 속의 세번째 관(=속관]을 끄내 전시한 모습
▲ 석관 안(속)의 미라 형태의 첫 번째 관
▲ 첫 번째 관 확대 사진
▲ 첫 번째 관 받침 부분
▲ 앞쪽(左下)은 미라 형태의 첫 번째 관속에 있는 두 번째 관 [ 뒤쪽(右上)이 석관 내(內) 첫 번째 관 ]
■ 석관 안에 있는 관으로 뒤쪽(우측 위)이 제일 밖에 있는 첫 번째 관이고 앞쪽(좌측 아래)이 그(첫 번째 관)안에 들어 있는 두 번째 관이다.
▲두 번째 관 확대 사진
▲ 부패 방지용 기름이 잔뜩 칠해져 있는 순금 관(세번째관)이 중간 관(두번째관)의 바닥(속)에 놓여 있다
▲ 두 번째 관 속의 세 번째 관(=속관)으로 관을 연 모습이며 앞쪽(아래)이 관 뚜껑, 뒤쪽(위)이 관속의 황금 마스크를 쓴 투탕카멘의 미라 직전의 모습 ( 우리나라 장례의 '염' 한 모습 )
■ 금으로 된 속관 - 금과 유리와 보석과 상감으로 되었는데 길이는 187cm이고 높이는51.3 cm다. 무게가 110.4kg이나 나가는 가장 안쪽에 있는 순금관은 무덤에서 나온 유물 중 황금 마스크와 함께 가장 멋진 보물 중 하나다. 이관은 미라 형태의 왕을 나타내고 있는데 깃털 옷을 입고 신을 상징하는 턱수염을 하고 있으며 양쪽 팔에 왕홀을 쥐고 두건을 썼다. 황금 마스크와 마찬가지로 이 관의 얼굴 표정은 공식적이고 이상적인 왕의 초상을 보여 준다. 불행하게도 짙은 라인의 눈 주변 상감 세공은 관에 제의용 향유를 뿌리는 바람에 지워져 버렸다. 깃털 무늬와 표면의 새김글은 다리 부분의 여신 이시스와 네프티스의 정교한 부조처럼 두꺼운 순금 판을 끌로 새긴 것이다. 이는 원래 새 모습을 한 여신들을 그린 것이었는데 나중에 끌로 새긴 것에 호화롭게 상감 세공을 한 것이다
↕ 두 번째 관 속의 세 번째 관(=속관) 뚜껑
◆ 미라형 관과 머리띠,황금 마스크에는 독수리와 뱀 장식이 있다
↕속관(=세 번째 관) 안의 황금 마스크를 쓴 투탕카멘의 미라 직전의 모습 (우리나라 장례의 '염' 한 모습)
투탕카멘 속관에 나타난 미라형 모습으로 이 안에 있는 그의 미라를 감싼 붕대의 위 아래에서 150 여점의 부적과 장신구가 쏟아져 나왔고 목걸이 장식 등이 덮여 있었다고 한다.
■ 미라의 장신구-마스크 바로 아래 미라의 가슴에는 수지로 코팅된 스카라베 풍뎅이가 놓여 있었고, 그 양 옆으로 황금으로 빛나는 두 손이 교차되어 있다. 두 손은 미라를 감은 아마포 붕대에 꿰어진 상태로 휘장을 쥐고 있었는데 휘장의 목제 부분은 사라지고 없다. 두 손 아래에는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한 ‘바’새가 양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이 새는 내세에 사는 사람들의 일부를 상징하는데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고 언제라도 관속의 미라와 재결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미라를 감싸고 있는 붕대를 풀자 수많은 부적과 장신구가 쏟아져 나왔다. 모두 150 여개나 됐다. 가슴 부위에는 여러 개의 목걸이 장식들이 덮여 있었는데, 독수리와 매, 날개 달린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펜던트와 가슴받이 장식도 있었다. 또 팔뚝에는 여러 개의 팔찌가 줄줄이 걸려 있었다. 하반신 쪽에는 단검 두 개와 왕관형 머리띠 같은 수많은 장신구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속에서 새 모양의 목걸이 장식들이 추가로 발견됐다. 부적 역할을 하는 이런 장식물은 고정된 패턴에 따라 미라 위에 고르게 놓여졌는데 신체 또는 신체의 개별 부위 및 내장 기관들을 보호하려고 고안된 것들이다.
▲황금 마스크를 쓴 미라의 상체 부분으로 머리에는 독수리와 뱀 장식이 있다
▲ 미라의 장신구-사람의 머리모양을 한 ‘바’새가 양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의 장신구
정면에서 본 ▲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순금 11 kg]
이집트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는 순금이 11 kg 이나 들어간 것으로, 이 마스크는 소년왕을 실제와 비슷하게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한 후기 아마르나시대의 예술양식으로 제작된 유물로 눈에는 석영을 넣고 눈동자는 흑요석을 넣어 살아 잇는 듯한 실감을 느끼게 한 유물이다.
측면에서 본 ▲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후면에서 본 ▲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무게[순금]가 11 kg인 이 마스크는 미라의 머리 위에 씌워져 있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이 마스크를 보물 중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소년 왕을 실제와 비슷하게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한 이 황금 마스크는 후기 아마르나시대의 예술양식으로 제작됐는데, 그 우아함은 어느 유물과도 비교할 수 없다. 살아 있는 듯한 눈에는 석영을, 눈동자에는 흑요석을 상감 세공 해 넣었다. 줄무늬의 두건 앞 이마에는 신성한 상징 2개가 달려 있는데, 상(上)이집트의 독수리 머리와 하(下)이집트의 뱀 몸통이다. 크기가 서로 다른 양쪽 귀에는 귀고리를 하기 위해 귓불을 뚫었다. 마스크는 얼굴을 덮었을 뿐 아니라 매 머리 모양으로 끝을 처리한 둥근 옷깃이 있는 가슴 부위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마스크의 뒤쪽에 새겨진 문자는 감각기관을 신과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내용과 함께 마스크를 씌우는 동안 장례의식의 일부로 암송됐을 법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마스크는 유리와 준보석으로 상감 세공된 순금 11 kg으로 높이는 54 cm이다.
■ 투탕카멘소개 :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왕. 그는 왕족 출신인데 제10대 왕 이크나톤(아멘헤테프 4세)의 아우 또는 조카라고도 하는데, 출생에 관해서는 확실하지가 않다. 제11대 세멘크카라는 만년에 이크나톤과 공동 통치를 펼쳤으나 재위 3년 만에 죽었기 때문에 9세에 즉위하였다. 왕비는 이크나톤과 네페르티티의 제3왕녀인 안케센아멘이다.
그는 종교개혁왕 이크나톤의 셋째 딸 안케스엔파아텐과의 결혼으로 왕위계승권을 얻었다. 9세경 즉위하고, 처음에는 아텐신을 받들었는데, 치세 제4년경 <종교개혁>의 방기에 나서서, 신앙부흥의 칙령을 공포하고, 아멘신앙을 비롯한 전통적인 다신교 신앙을 부활시키고, 왕도도 아텐의 수도 아케토아텐에서 멤피스로 옮기는 동시에 왕명을 투탕카멘 ( 본명은 투탕카텐(Tutankhaten)이었으나 왕위에 오른 뒤 투탕카멘(Tutankhamen )으로 바꾸었다.그러나 어렸기 때문에 국정의 실권은 섭정 아이와 장군 호르엠하브가 장악했다고 보인다. 호르엠하브는 아시아 원정을 재개하고, <아마르나 혁명>의 혼란을 타고 진출한 힛타이트에 대항해서 남시리아의 확보에 성공했다. 재위 9년 후, 18세로 사망하고, <왕들의 계곡>에 서둘러 준비된 묘(제62호 묘)에 매장되었다.
1922년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 1873~1939)에 의해서 발견된 왕묘는 짧은 계단과 통랑이 전실, 부속실(별실), 현실, 보고(보물의 방)등 4실로 통하는 이례적인 소형의 것으로 벽화는 현실(玄室)에만 있다. 4겹으로 된 대형 황금 칠의 목관(사당), 석관, 3겹의 인형(미라형)관에 안치된 황금 마스크를 쓴 왕의 미라를 비롯해, 대량의 부장품은 거의 완전한 채로 남아 있으며, 도굴을 면한 <왕들의 계곡> 유일한 왕묘로서 당시의 파라오의 매장 관습을 아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703점의 출토품 중에는 왕의 부활에 필요한 내장을 넣은 카노포스 용기나 신상, 왕상 외에 현세와 마찬기지로 내세 생활에 필요한 왕좌와 침대∙ 함 등의 가구나 그릇, 의류, 장신구, 무기, 수렵구, 전차 등이 포함되어 당시의 호화로운 궁정생활과 높은 공예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 그대로 남아 있는 석관, 미라형관, 미라를 제외한 유품의 대부분은 이집트의 카이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 Wab's 미라를 푸는 단계와 미라 처리 게약서-[ 런던 영국 박물관 ]
▲ 투탕카멘 미라의 본래 모습
▲투탕카멘의 자녀 ▲투탕카멘의 가보(家寶)
▲투탕카멘의 자녀
▲위의 흉상은 딸의 묘지에 있던 마스크다. 18살의 나이에 죽었다는데,딸이 있었던 것 같다.